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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Music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합류 - "독일에 있어 낭만주의 운동" (번역)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합류


독일에 있어 낭만주의 운동


시는 독일 천재들에게 있어 최상의 표현수단이 아니었다. 이 천재들은 부분적으로는 너무나 이성적이었으며, 부분적으로는 너무나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성주의는 영국에서와 같이 실질적이지 않았고 이론적이었으며, 그 이성주의의 최종적 맥락은 내재적이며(I.뉴튼), 초월적인 것으로(G.W.라이프니츠) 이끌고 갔다. 그러므로 사실주의의 형식인 드라마와 소설은 초기 영국 문학에서 잘 표현되었으며, 반면 독일에서는 그러한 상황이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났다. 한편 독일 서정주의는, J.W.괴테와 F.휠더린에게서 처럼 총애하는 지적 자매라 할 그리스로 근접했을 때, 그리고 F.쉴러에게서 처럼 이성주의의 억제성으로 인해 초월성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방해된 철학적 사고가 시적 상상을 풍부하게 했을 때 위대한 시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성주의는 상상의 날개를 잘라낼 수 없었고, 독일 천재들은 가장 초월적인 영역인 종교에서, 이성과 초월주의가 각기 대등하고 서로 강화시키는 철학의 영역에서, 그리고 최종적이고 가장 내재적인 음악에서 그 위대성을 갖게 되었다. 이성주의는 W.A.모차르트나 L.V.베토벤에게 있어서 처럼 전적으로 사라져 버렸거나, R.바그너 처럼 철학의 어떤 종류로 변화하게 되었다.

루드비히 티벡은 그의 저서 “예술에 대한 환상 (Phantasien über die Kunst)”에서 말하길, ‘음악이 없는 지구는 황무지와 같으며, 거주자를 잃어버린 불완전한 집이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 역사와 성서적인 역사, 사실 모든 민족의 역사는 음악과 함께 시작된다.’ 라 했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단지 음악만이 그들의 시적 개념을 완전히 형상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음악의 개성화” 인 다양한 언어들로 고려되는, 음악으로부터 언어를 이끌어냈다. 반세기 뒤에 F.니체는 단어들이 고갈되고, 더 이상 예술가들의 감성을 전달할 수 없을 때 그들은 다시 음악으로 돌아섰으며, 그리하여 순환고리는 닫혔버렸다고 믿는 것으로서, 비극의 기원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선언했다.

R.바그너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전 세기의 볼테르는 노래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쟝 폴은 “색상(color)이 톤(tone)만큼이나 낭만적인 적은 없었다.” 라 말했고, R.슈만은 음악을 “그 자체로써 낭만적”이라고 했다. E.T.A.호프만은 음악만이 유일하고도 진정한 낭만적 예술이라 믿었고, L.V.베토벤을 낭만주의자로 지목했다. 반면에 F.휠더린은 음악에 비해 그의 언어가 초라하고 표현력이 없음을 깨닫고서 부끄러워했다. 모든 예술의 통합, 총체적 예술(Gesamtkunstwerk)이라는 낭만주의적 이상을 성취하기에 - 무한한 기간 동안 표현할 다른 예술은 없으며, 인간을 그토록 우주에 가깝게 접촉시킬 수 있는 예술은 없으며, 다양성에서 통일성으로의 방향을 그토록 직접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다른 예술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가 이루어졌을 때 조차, 음악은 낭만주의자들에게 언어와 톤의 조화를 찾는 목표를 추구하도록 촉구했으며, 결국 음악은 세계철학이 되었다. “음악은 예술의 예술이다.” “원시적 존재의 혼돈으로부터 인간 영혼의 감성을 분리해낼 수 있기 때문에” 라고 W.H.바켄로더는 말했다. 음악은 무한한 통일의 상징으로서 낭만주의가 되었다.

Paul Henry Lang, "Music in Western Civilization" (1941),
Ch.15. The Confluence of Classicism and Romanticism - The Romantic Movement in Germany
(pp.744-745) 에서 번역
(translated by Kim Yun-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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